나는 배웠다!
나는 배웠다.
모든 시간은 정지되었다. 일상이 사라졌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만나도 경계부터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마주 앉아 팥빙수를 겁 없이 떠먹던 날이 그립다. 가슴을 끌어안고 우정을 나누던 날이 또다시 올 수 있을까? 한숨이 깊어진다. 비로소 나는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배웠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한다. 속히 일상의 기적과 함께 기적의 주인공으로 사는 일상을 달라고.
나는 배웠다.
마스크를 써 본 뒤에야 지난날의 내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고 침묵을 배웠다. 너무나 쉽게 말했다. 너무 쉽게 비판하고 너무도 쉽게 조언했다. 생각은 짧았고 행동은 경박했다. 나는 배웠다. ‘살아있는 침묵’을 스스로 가지지 못한 사람은 몰락을 통해서만 ‘죽음으로 침묵’하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배웠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었다. 성직자도 아니었다. 소식을 듣자 대구로 달려간 신혼 1년 차 간호(천)사가 가슴을 울렸다. 잠들 곳이 없어 장례식장에서 잠든다는 겁 없는 간호(천)사들의 이야기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따뜻한 더치커피를 캔에 담아 전달하는 손길들을 보며 살맛 나는 세상을 느꼈다. 이마에 깊이 팬 고글 자국 위에 밴드를 붙이며 싱긋 웃는 웃음이 희망 백신이었다. 나는 배웠다. 작은 돌쩌귀가 문을 움직이듯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저들의 살아있는 행동인 것을.
나는 배웠다.
죽음이 영원히 3인칭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언젠가 내게도 닥칠 수 있는, 그래서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죽음인 것을 배웠다. 인간이 쌓은 천만의 도성도 바벨탑이 무너지듯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미생물의 침투에 너무도 쉽게 쓰러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배웠다. 그런데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다구니를 퍼붓고 살았으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를 배웠다.
나는 배웠다.
인생의 허들경기에서 장애물은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라’고 있는 것임을.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재정의하고 살아남아 영웅이 될지, 바이러스의 희생양이 될지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닥친 불행과 시련을 운명이 아닌 삶의 한 조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때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배웠다.
카뮈의 ‘페스트’에 등장하는 북아프리카의 항구 오랑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서로를 향한 불신과 배척,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지옥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는 ‘공황도 폭동도 혐오도 없었다. 침착함과 고요함이 버티고 있었다.’(미국 ABC 방송 이언 기자) 일본의 대지진 때 일어났던 사재기도 없었다. 오히려 ‘착한 건물주 운동’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외출 자제로 인간 방파제가 되어 대한민국을 지켰다. ‘배려와 존중’으로 빛났다. 나는 위기에서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고 극한 상황에서 ‘도시의 품격’이 확인된다(이동훈)는 것을 배웠다.
나는 배웠다.
어떤 기생충보다 무섭고 무서운 기생충은 ‘대충’이라는 것을. 모든 것이 대충이었다. 손 씻기도 대충, 사회적 거리 유지도 대충, 생각도 대충…. 이번 사태에도 너무 안이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 면역주치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환경 문제나 생태계의 파괴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다시 찾아올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환경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확실히 배웠다. 공생과 공존이 상생(相生)의 길이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가장 큰 바이러스는 사스도 코로나도 아닌 내 마음을 늙고 병들게 하는 절망의 바이러스라는 것을. 나는 배워야 한다. 아파도 웃어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아니 그게 진정한 인간 승리임을. 나는 기도한다.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안코라 임파로!(Ancora imparo!)”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는 이탈리어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스케치북 한쪽에 적은 글이란다. 87세 때 일이다. 내 나이 겨우 60을 넘겼다. 그래, 우리는 모두 살아야 한다. 잘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다.
“안코라 임파로! (Ancora imparo!)”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살아있다.
송길원목사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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