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마음속엔 푸른 꿈이 자란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은 그 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한다. 이런 어린이 100명의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주는 ‘아름다운 기부 릴레이’가 진행 중이다. 저소득층 아동지원 네트워크인 드림투게더가 진행하는 ‘크리스마스 100일의 기적, 100명의 아동 꿈 이루기’ 프로젝트다. 크리스마스 100일 전부터 한 사람당 1만원씩 성금을 모아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들을 돕자는 캠페인이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드림투게더 홈페이지(www.idreamtogether.org)에서 참여할 수 있다.
양평=채윤경 기자
#1. “책으로만 봤는데도 이렇게 멋진 분인데 실제로 뵙게 되면 얼마나 멋질까요?”
7일 오전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새싹꿈터’에서 만난 초등학교 5학년 조은비(12)양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가정폭력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집에서 살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한 ‘꿈 찾기 캠프’에서 은비는 최초의 여성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는 은비에게 유엔 사무총장의 꿈은 외롭고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돼줬다.
은비의 아빠는 3년 전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다. 아빠가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겨울 은비의 엄마도 집을 떠났고, 춥고 배고팠던 은비는 친구를 따라 지역아동센터를 찾았다. ‘생일에는 꼭 얼굴 보러 오겠다’는 엄마의 약속을 믿고 센터에 정착한 은비에게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은 엄마이자 친구였다.
"부모님이 없어 외로울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들은 ‘네가 어려운 환경에 있기 때문에 더 강해질 수 있어. 은비는 커서 왕들을 상대하는 지도자가 될 거야. 하나님이 은비를 요셉 같은 리더로 만드실 거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어요.”
은비는 밤낮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왕들을 상대하는 지도자, 왕들을 상대하는 지도자라….’ 그러던 지난해 봄 수업시간에 학교 선생님이 반 총장 얘기를 해주셨다. 호기심이 생긴 은비는 반 총장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무릎을 탁 쳤다. “그래, 반 총장님 같은 사람이 돼서 나처럼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아이들을 도와줘야지. 가정환경보다는 자신감과 긍정적인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은비의 꿈을 전해 들은 아동센터의 선생님은 2010년 3월부터 은비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등 친딸처럼 독려해줬다. 그 결과 은비는 지난 9월 주한 미8군 주최 제14회 영어말하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은비를 3년간 돌봐온 엘리트지역아동센터 박우정 센터장은 “은비가 자신의 꿈을 말하고 다니면서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며 “은비가 부모님이 안 계셔 주눅들 때마다 ‘지도자는 당당함과 이성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얘기해준다”고 말했다.
#2. 충북 청주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박혜린(12)양의 꿈은 ‘제주도 가족여행’이다. 혜린이네 가정은 한 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동생 혜연이(10)가 태어날 때부터 자폐장애와 청각장애를 앓아왔기 때문이다. 혜연이의 보청기와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아빠는 밤낮으로 일해야만 했다. 300만~400만원에 달하는 보청기 값이 만만치 않았다. 혜린이에게도 상처가 있다. 일곱 살 때 동네 지체장애인 때문에 옥상에서 떨어져 뇌를 크게 다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후유증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주의를 요구했다.
혜린이의 아빠는 두 딸을 위해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12시간 배터리 조립을 하는 공장노동자다. 2교대 근무에 몸이 축나는 것을 느끼지만 일을 쉴 수가 없어 집에 오면 쓰러져 자기 일쑤다. 하루 종일 동생이 사고 나지 않게 돌보며 식당일까지 하는 엄마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아빠와 엄마가 동생 문제로 다투고 힘들어할 때도 혜린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맛있는 도시락을 싸 들고 공원으로 나들이도 가고 동물원도 가보고 싶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혜린이는 늘 마음이 아프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행동도 부자연스럽고 소리도 안 들리는 동생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혜린이는 “나와 동생을 위해 고생하는 엄마와 아빠가 하루만이라도 푹 쉬었으면 좋겠다”며 “물을 좋아하는 동생을 데리고 깨끗한 제주 바다에서 마음껏 뛰놀고 싶다”고 가족여행의 꿈을 내비쳤다. 제주도는 혜린이 부모님의 사랑이 어린 신혼여행지이기도 하다.
꿈은 이루어진다
반 총장을 만나고 싶어 하는 은비와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은 혜린이의 꿈이 이뤄지도록 돕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크리스마스 100일의 기적’ 선정위원회가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모인 사연과 소원 중에서 대상을 확정한다. 지역아동센터는 과거 저소득층 아동들을 위한 지역 공부방이 아동복지법에 의한 복지시설로 바뀐 곳이다.
이렇게 모인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선 일반 시민들의 기부도 필수적이다.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은 060-700-1700(1만원)에 전화하거나 드림투게더 홈페이지 에서 신용카드, 계좌이체, 휴대전화 결제를 하면 된다. 페이스북에서도 기부할 수 있다. 1만원부터 큰 액수까지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보내져 연말에 해당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데 쓰인다. 캠페인 참여자들은 12월 22일 열리는 ‘꿈이 이뤄지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다.
CEO부터 행상 아줌마까지 … 참여 줄이어
어린이들의 소원이 널리 알려지면서 각계각층 인사들도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이미 KT·KBS·대명리조트·매일유업·하나투어·한국건강관리협회·베스티안 화상후원재단·비룡소·세브란스병원·엘리트학생복·이스트소프트·일성건설·정철영어TV·지산교육·캐논코리아·코리아보드게임즈·타임즈코어·한국가이던스·함소아한의원 등 20여 기업과 단체가 동참을 약속했다.
이석채 KT 회장은 7일 경기도 양평의 새싹꿈터를 직접 찾아 은비를 비롯해 캠프에 참여한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만났다. 이 회장은 아이들과 함께 팔씨름을 하고 밭에서 배추를 수확하 며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라”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또 “소외된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야 불평등 문제도, 사회 계층 간 유동성 문제도 풀리는 만큼 100일의 기적과 같은 프로그램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가수 김종국씨는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저를 능력자로 불러주시는데, 사실 진정한 능력자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뤄낼 줄 아는 사람”이라며 "많은 시민이 아이들의 꿈을 위해 기부에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희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한 나라의 과거는 박물관,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라 는 말과 함께 기부에 동참했다. 기업인들도 뜻을 모았다. 박상환 하나투어 대표는 ”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이라며 “많은 이의 기부가 꿈꾸는 아이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이창근 매일유업 사장은 “매일매일의 작은 꿈이 모이면 행복한 미래가 된다”고 조언했고, 권태욱 지산교육 대표는 “큰 꿈을 가진 사람은 항상 노력하고 방황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100명의 아이에게 힘을 실어줬다. 프로골퍼 김대현 선수, 가수 레이디제인과 이한철·박상철·금잔디씨 등도 크리스마스 100일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에 동참했다.
시민들도 불경기를 잊고 정성을 보탰다. 재래시장에서 수선일을 하는 전분예씨는 “아이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며 기부 행렬에 힘을 더했고, 과일행상을 하는 이성연씨도 “아이들의 소원이 꼭 이루어지도록 응원할 테니 힘내라고 전해 달라”며 동참했다. 은비의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의 응원 댓글도 줄을 이었다.
이영숙씨는 “반 총장님도 어려운 형편에도 미군부대에서 외국인들과 대화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며 “꿈을 잃지 말고 항상 행복하게 살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송도영씨는 “큰 꿈은 큰 사람을 만들어낸다”며 “은비의 꿈을 다 함께 응원하자”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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