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을 꿈꾸는 우리 학생들이 1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과거 '딴따라'라며 업신여김을 받던 직업이었는데 이제 학교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이 됐습니다. 하지만 고교생 70% 이상은 국어·영어·수학 성적을 중요시하는 일반계 고교에 다닙니다. 개인의 특성이나 희망 진로와는 무관한 획일적 교육과정 속에서 자신의 꿈을 구체화하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을 위한 무대가 지난 5일 인천시교육청에 마련됐습니다. 시교육청이 주최한 '대중문화 예술여행'입니다. 교육청판(版) '슈퍼스타 K' 오디션이 있던 날 교육청 대강당은 수백 명의 학생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스타 꿈꾸는 학생들의 도전기
인천시교육청 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은 자신이 호명(呼名)되면 한켠에 마련된 오디션장으로 들어가 갈고 닦은 기량을 펼쳤습니다. 꿈을 펼칠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에게는 적잖이 긴장되는 무대입니다. 오디션에 합격한 학생 160여명은 오는 12일부터 토요일을 이용해 내년 1월 14일까지 총 140시간 동안 동국대 예술대학 교수들로부터 직접 연기·노래 지도를 받게 됩니다. 교수들과 함께 무대에서 공연도 합니다. 당초 오디션까지 할 계획은 없었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3배 이상의 학생이 참가를 희망하면서 프로그램 참가자를 가리기 위한 오디션이 치러지게 됐습니다.
인천 인일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인 김연희(17)양은 어릴 때부터 드라마 배우를 꿈꿨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이야기할 때 새하얀 얼굴이 자주 붉어집니다. 그러나 꿈을 이야기할 때만은 눈빛이 유독 반짝였습니다. 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배우가 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1년 전 예술고교에 진학하기 위해 한 달간 연기학원에 다녔지만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지 못했답니다. 한 달 학원비는 40만∼50만원 정도. 연희는 결국 부모님과 상의 후 일반계 고교에 진학해 공부를 하면서 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도 연희의 머릿속엔 온통 ‘연기’뿐이었습니다.
‘대중문화 예술여행’ 오디션 공고를 보자마자 곧바로 참가를 결심했습니다. 연희는 즉흥연기 과제 10가지 중 ‘그 어떤 것도 발명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소녀’ 역할을 택했습니다. 지하철에서 지병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를 발견했지만 휴대전화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연희가 휴대전화를 발명하는 설정이었습니다.
기말고사를 이틀 앞두고 연희는 시험공부 대신 연기(演技) 공부에 나섰습니다. 인터넷으로 ‘즉흥연기’에 관한 동영상을 검색하면서 대사도 준비하고 표정 연습도 했습니다. 연희는 “준비한 걸 제대로 못 보여줬다”며 아쉬워했지만 미소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에 열정을 쏟고 있다는 ‘행복감’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오디션장에는 연희처럼 연기자를 꿈꾸는 학생 200여명이 모였습니다. 대부분 전문적으로 연기를 배워보지 못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래도 열정만큼은 ‘프로’ 이상이었습니다. 김은호(17)군 역시 연기학원엔 한 번도 다니지 않은 배우 지망생입니다. 은호는 오디션장에 들어서며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는 역할에 몰입해 연기를 펼쳤습니다. 연기 도중 눈시울이 불거지며 흐느끼기도 했습니다. 한 심사위원은 연기를 마친 은호에게 “연기할 때 눈물이 나서 우는 것은 좋았지만 흐느끼는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은호는 처음 받는 연기 지도에 고개를 끄덕인 뒤 밝은 표정으로 오디션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오후에는 아이들 노랫소리가 대강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실용음악 과정에 응시한 학생 200여명의 오디션이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김모(17)양은 뮤지컬 곡을 골라 오디션에 참가했습니다. 김양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몇 번이고 꿈을 접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 사회복지 기관의 장학금을 받으며 노래학원에 다닌 적이 있지만 매달 수십만원의 학원비에는 턱없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김양은 선발되면 동국대 예술대학 교수들로부터 20회에 걸쳐 즉흥 연주·화성학·편곡 등을 배우게 됩니다. 교육비는 전액 인천시교육청이 지원합니다.
교사·부모도 간절히 합격 기원
오디션장에는 자녀의 합격을 기도하는 학부모도 많았습니다. 이어진(17)양을 기다리던 어머니 정수경(43)씨는 “일반고는 예고와 달리 예술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적다. 교육청에서 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믿음이 간다. 딸이 꼭 붙었으면 좋겠다”며 웃었습니다. 어진이는 예술고 진학을 포기하고 일반고에 진학해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 5명을 데리고 오디션장을 찾은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인성여고 박선영 교사는 영어 연극을 지도하던 경험을 살려 학생들의 연기 지도를 자처했습니다. 오디션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참여 학생들은 기말고사가 끝났다는 해방감도 잠시 접어두고 밤늦도록 학교에 남아 연기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연기·노래 연습을 하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했다”며 “어려운 학생들에게 예술 교육의 기회를 줄 수 있고 인성 교육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일반계 고교 ‘꿈 찾기 프로젝트’
인천시교육청이 지난해 9월 2∼5일 인천 소재 일반계 고교 1·2학년 4만9823명을 상대로 진로에 대해 전수조사한 결과 3176명(6%)은 ‘직업위탁교육’을, 2328명(5%)은 ‘대중예술교육’을 희망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인문·자연 계열 중심의 보통 교육과정 이외에 다른 교육 기회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진로를 정확히 정하지 못한 학생은 74.1%였습니다. 다양한 진로를 접해보고 꿈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한 상황입니다.
시교육청은 학생들의 꿈을 키워주고 일반계 고교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대학과 연계한 ‘다빈치 여행’을 기획했습니다. 지난 5일 실시된 ‘대중문화예술여행’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가 마련됐습니다. 인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상상여행’이 마련됩니다. 서울대 교수진뿐 아니라 철학자 탁석산씨 등의 강연을 7회 들은 뒤 에세이 14편을 작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첫 강연은 오는 19일 김영수 역사학자의 ‘사기(史記)에서 인간을 읽는다’ 편이 진행됩니다.
창업을 꿈꾸는 아이들을 위해 ‘창조창업여행’도 있습니다. 중앙대 경영·경제학과 교수진의 ‘기업가 정신’ ‘창업 과정’에 대한 강연이 10회 진행됩니다. 자신이 어떤 창업을 할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시간도 마련됩니다. 4∼5명이 지도교사와 함께 팀을 이뤄 인하대 교수와 함께 연구를 하는 ‘다빈치여행’도 흥미롭습니다. 일상생활이나 현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연구주제입니다. 모든 연구주제는 대학 교수진과 연계돼 전문적으로 탐구하게 됩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9일 “일반고 학생들이 희망하는 진로가 다양한 만큼 이들에게 맞춤형 교육 기회를 확대해 자신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럴 경우 일반고도 교육 역량이 강화돼 학생들의 명확한 진로 목표를 지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인천=글·사진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출처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731459&code=11131100&cp=nv]